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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권위

2010/12/14 02:16

보수란 뭘까. 내가 들어본 표현 중 보수의 본질을 가장 정확한 건 투자 컨설턴트들이 투자자들에게 곧잘 던지는 주문에 있었다. "보수적 투자" 투자를 하고 수익을 얻되 보수적으로 하라. 즉, 원금 손실의 리스크가 가장 적은 범위내에서 움직이란 뜻이다.

이렇게 보자면 정치적 보수란 그 사회에서 유지해 온 무언가를 최대한 유지하며 변화를 채택하는 정치적 지향일 것이다. 그 무언가는 관습일 수도 있고, 문화일 수도 있다. 때문에 보수는 그 사회에서 버릴 수 없는 최소한의 범주를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랄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수와 폐쇄는 분명 다르다. 보수라고 변화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내가 보았던 한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의 예로는 밴쿠버 백인 중산층의 문화적 보수주의가 있다. 도시 인구분포에서 그 입지를 넓히는 중국인들과 중국인들이 들여오는 탈맥락적인 건축양식에 대한 분명한 반대, 중국인 거주지와 그들의 자본이 추진하는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반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보수=개발의 등식이 항상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생생한 증언이었다. 물론, 그들의 가치가 나와 같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개인의 경제적 이해관계만으로 축소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이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볼 때 보수가 가지는 긍정적 기능은 채택가능한 변화, 채택한 변화의 효과를 따져 볼 수 있는 논쟁의 준거를 마련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들이 옳고 변화는 틀렸다가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변화하고 나아가는 지, 지금 사회적 최소합의가 어느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논쟁의 기준'일 수 있다.

기준점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려면 이들이 일정한 사회적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권위란 장 담그는 일은 자연이 시간을 들여 하는 일이라며 진정한 슬로푸드가 장이라 너스레 떠는 장인의 권위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오랜 세월 고집으로 지켜낸 전통의 향기가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권위의 향기일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 함석헌 선생이나 리영희 선생 정도라야 그런 향기가 나지 싶다. 이렇게 보면, 권위에 가장 상극이 되는 건 구린 돈냄새가 아닐까. 돈냄새 나는 곳에 권위라는게 힘을 발휘할 수 없고, 그런 다음엔 보수는 보수의 힘을 잃는다.

보수/진보를 좌우의 논리로 나누고, 반공주의 외치며 스스로 보수인 양 하는 인사들 중에 이런 권위를 가진 자가 있을까? 돈벌레나 사기꾼의 구역질나는 냄새나는 자들이 스스로 보수라 떠벌이고 다니는 한 우리 사회에서 권위의 향기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레반터 Levanter Memorandum ,